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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그리고 시 와 글33

3단 - 박노해 3단 - 박노해 물건을 살 때면 3단을 생각한다 단순한 것 단단한 것 단아한 것 일을 할 때면 3단을 생각한다 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 사람을 볼 때면 3단을 생각한다 단순한가 단단한가 단아한가 2020. 11. 18.
기다림 - 이미순 기다림 - 이미순 금방이라도 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은 그리움 하나가 아직 보이질 않는다 창밖에는 여름내 힘찬 박동으로 푸른 핏줄 솟아 올리던 잎새들은 온데간데없고 혈색 하나 없는 낙엽들만 허공 위로 가득하다 때로는 후회를 하면서도 지워지지 않는 경계선 하나 그어 놓고 혼자서 눈물 글썽이고 있는 허약해진 마음 가슴속엔 가을바람 스쳐가는 소리만 가득하다 2020. 11. 18.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 거린다 바스락 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 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 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 2020. 11. 18.
사랑하는 별 하나 - 이상선 사랑하는 별 하나 - 이상선 나도 별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외로워 쳐다보면 눈 마주쳐 마음 비쳐주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도 꽃이 될 수 있을까 세상일이 괴로워 쓸쓸히 밖으로 나서는 날에 가슴에 화안히 안기어 눈물짓듯 웃어 주는 하얀 들꽃이 될 수 있을까 가슴에 사랑하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외로울 때 부르면 다가오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마음 어두운 밤 깊을수록 우러러 쳐다보면 반짝이는 그 맑은 눈빛으로 나를 씻어 길을 비추어 주는 그런 사람 하나 갖고 싶다 2020. 11. 18.
부부 - 문정희 부부 - 문정희 부부란 여름날 멀찍이 누워 잠을 청하다가도 어둠 속에서 엥 하고 모깃소리가 들리면 순식간에 합세하여 모기를 잡는 사이이다 많이 짜진 연고를 나누어 바르는 사이이다 남편이 턱에 바르고 남은 밥풀만 한 연고를 손끝에 들고 나머지를 어디다 바를까 주저하고 있을 때 아내가 주저 없이 치마를 걷고 배꼽 부근을 내미는 사이이다 그 자리를 문지르며 이달에 사용한 신용카드와 전기 세를 함께 떠올리는 사이이다 결혼은 사랑을 무화 시키는 긴 과정이지만 결혼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지만 부부란 어떤 이름으로도 젤 수 없는 백 년이 지나도 남는 암각화처럼 그것이 풍화하는 긴 과정과 그 곁에 가뭇없이 피고 지는 풀꽃 더미를 풍경으로 거느린다 나에게 남은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네가 쥐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손은.. 2020. 11. 18.
티벳에서 - 이상선 티벳에서 - 이상선 사람들은 히말라야를 꿈꾼다 설산 갠지스의 발원 저 높은 곳을 바라보고 생의 끝봉우리로 오른다 그러나 산 위에는 아무것도 없다 생의 끝에는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가기 위하여 많은 짐을 지고 이 고생이다 2020. 11. 18.
비 가는 소리 - 유안진 비 가는 소리 - 유안진 비 가는 소리에 잠 깼다 온 줄도 몰랐는데 썰물소리처럼 다가오다 멀어지는 불협화(不協和)의 음정(音程) 밤비에도 못다 씻긴 희뿌연 어둠으로, 아쉬움과 섭섭함이 뒤축 끌며 따라가는 소리, 괜히 뒤돌아다보는 실루엣 같은 뒷모습의 가고 있는 수묵 빛 밤비소리, 이 밤이 새기 전에 돌아가야 하는 모양이다 가는 소리 들리니 왔던 게 틀림없지. 밤비뿐이랴 젊음도 사랑도 기회도 오는 줄은 몰랐다가 갈 때 겨우 알아차리는 어느 새 가는 소리가 더 듣긴다 왔던 것은 가고야 말지 시절도 밤비도 사람도....죄다. 2020. 11. 18.
잘못-유안진 잘못-유안진 잘못하면 알아진다 너무나 많은 진실과 너무나 많은 거짓이 인생 한마디로 졸아들고 마는 것을 마흔의 나이에도 일흔의 생애도 결국 인생이란 두 글자에 담겨지고 마는 것을 그래서 인생은 봄날 꽃일 수 없고 여름 녹음일 수 도 없는 것을 오히려 인생은 밤에 우는 고목의 썩은 등걸인 것을 잘못해 봐야 알아진다 마흔 다섯이 마흔 살과 진배없고 마흔 아홉이 쉰 살보다 더 늙는 것을 마음의 헤매임이 몸의 헤매임보다 더 거칠고 황량하다는 것도 제 주먹보다 작은 술잔 속에 빠져 죽고 싶고 운명에 복수하듯, 되살아나고 싶은 것이 인생이란 것은 잘못해 봐야 알아진다. 거짓말일지라도 진리처럼 믿게 해줄 무모한 용기가 그립고 그런 거짓말쟁이 한 사람이 그리운 게 인생이란 것을 잘못하면 알아진다. 2020.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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